May 03, 1997

이중반룡의 CT연가(泥中蟠龍's CT戀歌)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나서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나서

독일인의 사랑 소담출판사 박형택
독일인의 사랑 -소담출판사-

(첫 번째 회상)
  우리는 언제부턴가 흐릿해져 가는 지난 추억을 가꾸고 아끼며 사랑하는 법을 잊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물론 낡은 책은 책장이 낧고 지저분하고, 글씨가 희미해야 낡은 책같듯이 우리의 추억, 기억, 고통, 아픔들도 망각의 저편으로 잊혀져가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희미해져가는 아름다운 추억을 가꾸고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기위해 가꿔가는 모습, 접히고 구겨진 책장을 펴고, 다시 읽고 하는 등의 모습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은 망망대해를 건너는 배의 지나간 항로이다. 그것이 거친 검푸른 바다를 건너온 것이든, 잔잔한 쪽빛 바다를 건너온 것이든,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배의 모습과 위치를 만든 것이고, 그 모습이 싫든 좋든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떠나온 항구가 희미해져가고, 아직 도착할 항구가 보이지, 정해지지도 않았다 할지라도.

4330년 4월 30일

  내 흐릿해져 가는 추억의 앞장들 그리고, 새로 추억들도 빼곡히 채워내려갈 그 시간 저편의 여백. 그 여백을 나의 그대와 자그마한 빈 곳도 없이 한 장의 수채화처럼 예쁘게 채워가고 싶구나. 한참이 지난 후에 지금을 되돌아 보면 재미 있겠지?

  그대의 지난 추억도 언젠가 다정히 마주앉아 들춰보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래.



(두번째 회상)
  만남고 헤어짐, 인연, 그리고 사랑, 이 단어들은 수천년간 인류의 이성과 감성에 파고들어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내고, 영향을 미쳐왔고, 그 진정한 의미와 기조를 찾기 위해 많은 지성인 혹은 지식인이라 칭해지는 사람들이 사유와 사고를 해왔지만, 날 명쾌하게 납득시킨 답을 아직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의 글들은 나에게 그 해답을 주지는 못해도 내가 왜 해답을 찾지 못했는가는 알려주고 있다. 내가 그 답을 찾고, 그 의미를 진정으로 느끼기에는 내가 너무 커버린 것이고, 나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져 낮은 곳에 위치한 해답을 볼 수 없는 탓이다. 만남을 느끼기전에 헤어짐을 걱정하고, 인연을 인정하기전에 우연으로 가장하려 하며, 내 사랑을 나눠주기전에 받을 생각으로 가득찬 이기심에 지배당하게 된다.

  운명과 인연의 거대한 인생의 파도와 망망대해를 보기에는 내 이기심과 자만심이 내 마음의 눈을 뒤덮어 바로 코 앞의 작은 파편하나 보기에 바쁘다. 이제 이 현실주의라는 허울좋은 옷과 함께 이 이기심을 벗어 던지려 한다. 퍼내지 않으면 마르고, 사용할수록 그 생명력을 넘쳐나는 샘처럼, 내 안의 사랑과 우정, 정체성을 찾아 넘치듯 나누며 마르지 않는 내 안의 사랑, 그 소중한 단어의 의미를 느끼려 한다.

4330년 5월 1일

  지금껏 헤어짐이 두려워, 내 안의 사랑을 나눠주지 않고, 아껴두었던 내 모든 것을 이제 그대와 나누려 한다. 샘이 쓸수록 생명력이 넘치듯 내 사랑도 그런지 그대를 마루타(?)삼아 실험해 보려한다.



(세번째 회상)
  이 글에서 반지의 의미, 난 그것을 아직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그녀의 이 세상에서 마지막 존재적 가치를 나타내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인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반지를 나눠주는 의식 자체는 그녀의 사랑과 약간의 욕심의 발로였으며, 그것은 받은 소년은 아직 죽음과 그 두려움, 그리고 그녀의 조금의 욕심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나 순수하며, 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소년의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이기에는 천사같은 그 소녀도 너무 나이가 많은 것이다. ‘타인‘이라는 단어의 자각. 그리고 ‘소유‘라는 단어의 자각. 이런 일들이 차라리 없었다면, 소년은 피터팬같이 살았을 것이다, 물론 사회적응에는 문제가 있겠지만. 이런 아이들만이 살아간다면,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지상최고의 사회이론이였을 것이다.

4330년 5월 3일

  그 소년의 순수한 사랑. 한편으로는 그 소년의 순수한 마음과 사랑이 부럽기도 하지만, 난 그대에게 그렇게 해 줄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은 그 소년이 밉군요.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세상의 때가 많이 묻었고, 그대에 대한 일종의 소유욕이 내 가슴 한 곳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때문이지.



(네번째 회상)
  때때로 우리는 옛 기억의 조각들이 현실 삶의 근원, 추진력이 됨을 잊고 살아간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에 지난 일들이 큰 힘이 될 수도있다. 그런 옛 추억 속의 첫사랑의 기억

  사랑은 맹목적이다. 특히 그것이 첫사랑일 경우, 그 특성은 더욱 두드러져 객관성이 결여된 채 맹목적 집착이 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이 힘들 때 새로운 힘이 되고, 다른 사람을 좀 더 넓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런 사랑이 영혼으로부터의 순수한 사랑이라면 한 번쯤은 멀리서 아주 멀리서 상대를 지켜보라. 그러면 그 사람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두 사람의 영혼에 더 없는 양식이 될 것이다.







1997년 봄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나서 남기는 낙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