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9, 2019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게임의 미니멀 라이프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게임의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나 공통적인 내용은 더 작은 소유이다. 사람마다 더 작은 소유의 기준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이전보다 조금씩 소유를 줄여가는 삶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연상될 만큼 극단적인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니멀 라이프가 경쟁하듯 가진 것을 버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소유한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지 충분히 고민하고, 소유에서 오는 만족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소유에서 오는 만족의 상당 부분은 경쟁에서 오는 것이다. 가진 것을 과시할 곳이 없다면 소유의 만족감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미덕이다. 자본주의는 더 많은 소득을 유도하고, 더 많은 소득을 통한 소비를 권장한다. 불과 30년 전 일반적인 가정집의 주방을 생각해보면 가스렌지, 냄비, 후라이팬 정도로 대부분의 요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요즘 주방을 보면 월등히 많은 수의 주방 용품 들이 그 역할을 나누어 하고 있다. 더 편리해졌지만, 더 복잡해 졌다. 이런 편리하지만 복잡하고 경쟁적인 소비에서 벗어나, 본질적 필요에 더 집중하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이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게임을 보면 경쟁 요소가 너무나 많다. 친구와 경쟁하고, 다른 유저와 경쟁하고, 다른 길드와 경쟁한다. 주간 랭킹을 경쟁하고, 월간 랭킹을 경쟁하고, 이벤트 미션, 던전 레이드를 경쟁한다. 레벨을 경쟁하고, 수집 달성율을 경쟁하고, 심지어 결제 금액도 경쟁한다.
 
물론 경쟁은 게임이 본질적인 요소이며, 경쟁이 없는 게임은 없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레벨업도 하고, 아이템 수집도 하는 것이다. 이런 경쟁은 유저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여 결제를 유도한다. 발생한 매출로 더 많은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고, 더 많은 콘텐츠가 더 많은 경쟁을 유도하고, 이런 경쟁이 다시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순환 구조가 만들려고 하는 것이 많은 게임 제작사의 목표이다. 이런 경쟁이 매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익을 목표로 하는 게임 제작사가 매출을 증대하기 위하여 경쟁을 유도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게임 내 경쟁 요소는 경쟁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게임으로 여유를 즐기고자 하는 유저에게는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바쁜 일상을 쪼개어 게임 내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게임에 접속할 시간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다. 학교에서도 경쟁하고, 회사에서도 경쟁하면서 집에서 쉬는 시간까지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힐링 게임이라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경쟁이 심하지 않아 플레이 스트레스가 적은 게임이라는 의미이다. 경쟁에 지친 유저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세상에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듯이 과금 요소를 조금은 줄인 미니멀 라이프같은 게임이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 이중반룡의 게임애가(泥中蟠龍의 Game愛歌)는 본인이 현재 <경향 게임스>에 2013년 9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칼럼의 초고를 올리는 것입니다.

December 05, 2019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긴장감과 정보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긴장감과 정보
 
긴장감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흔하게 사용한다. 긴장감의 사전적 정의는 마을을 조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감각이라는 뜻이다. 긴장감 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느낌으로 많이 사용된다. ‘긴장해서 실수했다.’, ‘긴장감 때문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긴장감은 무척 중요한 콘텐츠의 요소이다. 긴장감은 집중도를 높이고, 몰입감을 강화한다. 영화에서 몰입감이 높으면 의미 전달력이 좋아지고, 게임에서 몰입감이 높으면 플레이 시간이 증가한다. 그럼에도 게임 기획자를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자신의 생각이 부족한 경우를 많이 본다. 이번 칼럼에서는 긴장감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많은 경우 긴장감을 느낀다. 영화의 추격 장면을 보면서도 긴장감을 느끼고,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도 긴장감을 느낀다. 학생의 경우는 성적표를 열어보기 전에 긴장감을 느끼고, 취업준비생의 경우 면접보기 전에 긴장감을 느낀다. 그러나 정작 이런 긴장감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고민해 보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필자가 생각하는 긴장감의 원인은 정보의 부족에 있다. 결과를 아는 것에 우리는 긴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추격 장면도 결과를 알고 보면 그냥 화려한 장면일 뿐이다. 결과를 알고 읽는 추리 소설은 무척 심심하다. 이미 앍고 있는 성적이 표시된 성적표를 확인하는 것은 전혀 긴장되지 않으며,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입사 면접에서 긴장할 필요도 없다.
 
이런 정보의 부족으로 긴장감을 만들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첫째는 등장 캐릭터에게는 정보가 없고, 이용자는 정보가 있는 경우이다. 잔인한 살인마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주인공이 들어갈 때 관객은 주인공을 걱정하며 긴장하게 된다. 둘째는 등장 캐릭터와 사용자 모두 정보가 없는 경우이다. 공포 영화 같은 장르에서 많이 사용하는 이런 형태는 갑자기 어두운 밤길에 귀신이 등장하는 것 같은 장면에서 주로 나타난다. 셋째는 반대로 등장 캐릭터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사용자가 없는 경우이다. 추리 소설 같은 경우에 자주 나타나는 이런 형태의 긴장감은 결말에서 주인공인 명탐정이 내용을 주로 설명할 때 해소된다. 이런 형태의 긴장감을 구분해서 서스펜스’, ‘미스터리등으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필자가 이렇게 긴장감에 대해서 이야기한 이유는 콘텐츠에서 긴장감이 무척 중요한 요소임에도 많은 게임 기획자들이 긴장감, 집중도, 몰입 등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옛말에 알아야 면장(面牆)도 한다.’고 했다. 알아야 기획도 한다



※ 이중반룡의 게임애가(泥中蟠龍의 Game愛歌)는 본인이 현재 <경향 게임스>에 2013년 9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칼럼의 초고를 올리는 것입니다.

November 22, 2019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핀공장과 워라밸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핀공장과 워라밸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최초의 근대적인 경제학 저술로 유명한 국부론을 발표한 학자이다. 이 국부론에는 유명한 핀공장 이야기가 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수작업으로 열심히 핀을 만들면 20개를 만들 수 있다. 10명의 직원이 열심히 핀을 생산하면 2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10명이 핀의 제작 공정을 나누어 맡은 부분만 작업하여 생산하면 4,800개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각각 만들었을 때보다 분업하여 생산했을 때 월등히 생산 효율이 좋다는 이야기이다.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제작 과정을 보다보면 유독 개인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나 정보를 동료와 공유하지 않고, 혼자만의 자산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은 동료와 경쟁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혼자만 정보를 독점하여 경쟁 우위를 가지려 함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으로 등수를 받고, 대학 입학에서도 경쟁하여 당락이 결정된다. 경쟁이 익숙하여 사회에서도 경쟁 우위를 가지고자 하는 경향이 그대로 들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핀공장 이야기처럼 경쟁보다 분업과 협력이 월등히 효율이 좋다. 10명의 사람에게 경쟁을 유도하여 생산량을 증대시켜도 한사람이 100개의 핀을 만들 수는 없다.
 
활발한 정보의 공유는 협업과 분업을 활성화하고, 작업 효율을 증대시킨다. 개인의 정보를 공유하면, 본인 역시 새로운 정보를 받을 수 있다. 정보의 공유는 스스로의 정보를 정리하는 효과도 발생하며, 팀 전체의 효율도 증가할 수 있다.
 
최근 워라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워킹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우리나라는 근로시간이 길기로 유명하다. OECD 전체 국가 중에서도 Top3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며, 근무시간으로 경쟁하는 국가가 멕시코, 러시아 같은 국가이다. 국민 소득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독일, 스웨덴 같은 부자 국가가 아니라 멕시코, 러시아 등과 오래 일하는 것으로 경쟁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 소득이 높아질수록 삶의 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으며, 워라밸에 대한 요구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워라밸은 근무 시간의 감소가 필수적이며, 이는 작업 효율의 개선 없이는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지금부터라도 주변의 동료와 활발한 정보의 공유를 시도해보자. 그것이 게임의 퀄리티를 높이고, 근무 시간을 줄여주고, 나의 삶의 질도 높여줄 것이다. 용꼬리보다 뱀머리가 더 폼 날지는 몰라도 삶은 질은 용꼬리가 더 좋다.



※ 이중반룡의 게임애가(泥中蟠龍의 Game愛歌)는 본인이 현재 <경향 게임스>에 2013년 9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칼럼의 초고를 올리는 것입니다.

October 24, 2019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바칼로레아와 게임 산업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바칼로레아와 게임 산업
 
- 시간을 피하는 것은 가능한가?
- 예술작품을 설명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 문화적 다양성이 인류의 동질성을 방해하는가?
- 의무를 인정하는 것은 자유를 포기하는 것인가?
- 윤리적인 정치가 최선의 정치인가?
- 노동이 인간을 나누고 있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위의 질문들에 선뜻 답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필자 역시 저 질문을 처음 접하면서 답을 하기가 어려웠고, 사실 지금도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쓰려면 어려운 질문들이다. 이런 어려움은 필자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러나 슬픈 사실은 저 문제가 프랑스 대학 입학 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éat)’2019년 기출 문제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학생들은 대학 입학을 위해 위의 질문 같은 문제 중 하나를 골라 4시간에 걸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주장하는 글을 써서 제출한다. 시험이 있는 저녁에는 유명 인사들이 TV에 나와 학생들처럼 주어진 문제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한다고 하며, 학생들은 집에서 부모와 같이 문제에 대해서 토론한다고 한다. 해당 시험은 절대 평가이며, 일정 점수 이상을 받으면 모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우리의 입시 문화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또한 우리의 상대 평가, 순위 중심의 입시 제도와도 큰 차이가 있다.
 
위 시험 문제를 현재의 한국 고등학생들에게 제시하면 얼마나 답을 서술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의 입시 교육은 학생들이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여 서술하는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프랑스 학생들이 한국의 입학 시험을 치더라도 좋은 결과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어느 시험이 더 좋을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없는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을 기반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다. 영화의 시나리오, 웹툰의 세계관, 게임의 배경 스토리 등 다양한 이야기의 창작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세상은 콘텐츠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사회는 학생들에게 창의력을 요구하면서 정작 교육은 창의력을 가르치지 않는다.
 
게임은 다양한 분야가 결합된 종합 콘텐츠로서 세상에 대한 많은 이해가 반영되는 창작물이다. 한국의 콘텐츠 분야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 분야라도 학생들과 제작 스탭들의 창의력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것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런 노력이 모여서 게임 산업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전환하고, 한국 게임 산업의 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제 한국 게임 산업을 위한 바칼로레아를 준비할 때가 아닌가 한다.

※ 이중반룡의 게임애가(泥中蟠龍의 Game愛歌)는 본인이 현재 <경향 게임스>에 2013년 9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칼럼의 초고를 올리는 것입니다.

October 10, 2019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사람이 자원이다.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사람이 자원이다.
 
지난 달 917콘텐츠 산업 3대 혁신전략 발표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콘텐츠 산업을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3년 동안 콘텐츠 산업에 대한 지원투자금액을 1조원 이상 확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콘텐츠 산업의 주요 분야인 게임 산업에 있는 사람으로서 무척 기쁜 발표이다. 콘텐츠 산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발표는 사람에게 투자하겠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져서 더욱 기쁘다.
 
오랫동안 수많은 산업 분야에서 조금만 규제 정책이 나오면 인력 유출을 이야기했다. 최근 일본과의 무역 분쟁에서도 핵심 기술의 인력 유출로 기초 소재 산업 육성을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탈원전 정책이 나왔을 때도 1년에 수백명의 인력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고 아우성이었다. 경영 환경이 어려워지면,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할 것이라고 협박도 했고, 2030년까지 30%의 인력이 감소한다는 식의 장기적인 비관론도 쏟아냈다. 인력 유출이 국가의 부를 유출하는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게임 산업은 지난 6~7년간 통계적으로만 본다면 10만명 수준이던 종사자 수가 불과 몇 년 사이에 8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20%가 실제로 감소했다. 얼마나 더 감소할지는 알 수 없다. 해외로의 인력 유출도 심각하다. 많은 게임 제작사와 기술자들이 더 좋은 환경을 위해 해외로 자리를 옮겼다. 심지어 국내 종사자 수 8만명 중에도 상당한 비율이 사실은 중국 기업의 한국 자회사에 근무하는 숫자이다. 필자는 게임업계 인력 이탈이 심하며, 이대로 두면 한국 게임 산업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수차례 이 칼럼 지면을 통해 이야기했다. 처음 이 지면에 통해 게임 산업의 인력 유출과 관련된 글을 쓴 것이 벌써 6년 전인 201311월이다. 그 사이 게임 산업은 지속적인 규제와 탄압에 시달려 왔으며, 최근에는 질병 코드라는 막무가내 공격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콘텐츠 시장의 해외 수출은 2017년 기준으로 88억 달러 수준이다. 2017년 해외 수출 규모 10위인 품목의 수출이 92억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10위에 근접한 수준이다. 특히 88억 달러 중 약 67%59억 달러가 게임의 수출이며, 같은 해 게임의 수입이 2억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무역수지 흑자로는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 같은 해 국내 대표적 수출 품목인 자동차의 무역수지 흑자가 약 300억 달러라는 것을 비교하면, 수 만평의 공장도 없고, 환경 오염도 없는 게임 산업이 국가의 부에 기여한 바는 크다고 하겠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발표에 게임인의 한사람으로 감사드리며,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 예산 중 조금이라도 많은 부분이 게임 산업에 배정되어 게임 산업의 고용 확대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 이중반룡의 게임애가(泥中蟠龍의 Game愛歌)는 본인이 현재 <경향 게임스>에 2013년 9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칼럼의 초고를 올리는 것입니다.


September 19, 2019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생각하라. 그래야 존재한다.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생각하라. 그래야 존재한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를 나타내는 라틴어 명제이다. 데카르트는 참된 진리를 찾기위해 진리라 믿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론적 회의를 이야기하였다. 우리의 감각도 의심하였고, 우리의 사상과 종교도 의심하였다. 그러나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그것을 나타낸 표현이 바로 위의 명제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기존의 가치관, 지식 등을 의심하지 않고, 수용하여 믿는다. 필자는 6살 때 까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고, 초등학생 때에는 어른들의 말씀은 모두 진리라고 믿었고, 고등학생 때에는 신문 기사는 모두 사실이라 믿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통 고정관념 혹은 편견이라고 한다.
 
고정관념과 편견은 자유로운 생각을 막고, 예측 가능한 사고를 유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필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다보면, 어떤 문제에 대해서 많은 학생들의 거의 유사한 답을 내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물론 유사한 생각과 유사한 행동을 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이거나 죄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을 배우는 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정답이 있는 교육을 받았으며, 정답을 찾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답을 찾아야만 하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세상에 정답이 없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지금 정답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최근 학생들이 기획하는 게임뿐만 아니라 시장에 출시되는 많은 게임에서 일반화된 것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캐릭터의 수집이나, 디자인 스타일, UI(User Interface), 장비의 강화 등 많은 시스템적 요소들이 의심없이 정석이라고 불리는 형태로 제작되는 것을 본다.
 
처음부터 정석이었던 것은 없다. 어느 정도 성과를 낸 시스템이 정답으로 인식되고, 그런 인식들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권위를 가지게 된다. 권위를 가지게 된 시스템은 어느 순간부터 의심없이 정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요즘 게임 업계는 다양한 외부적인 요인으로 어렵다. 투자는 줄어들고, 빈익빈부익부는 커지고, 각종 규제에 대한 이야기와 게임 중독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게임은 콘텐츠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권위에 굴복하여 의심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으면 유저는 결국 그런 게임을 외면할 것이다. 식상하고 재미없는 게임을 좋아할 유저는 없다. 게임 업계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으면, 유저는 게임 이용 자체를 의심할지도 모른다


※ 이중반룡의 게임애가(泥中蟠龍의 Game愛歌)는 본인이 현재 <경향 게임스>에 2013년 9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칼럼의 초고를 올리는 것입니다.

September 05, 2019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연필과 스페이스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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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과 스페이스 펜


발상의 전환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 많이 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미국 항공 우주국(NASA)에서 개발했다고 하는 스페이스 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간단하게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은 우주 개발을 경쟁하고 있었다. 그 때 미국 항공 우주국은 무중력 환경인 우주에서 볼펜을 쓸 수 없어 해결 방법을 고민하다 중력, 온도 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우주 공간에서도 사용가능한 스페이스 펜을 수백만 달러를 들여 개발하였다. 이 스페이스 펜을 자랑하고 싶었던 미국의 과학자들은 소련의 우주 과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주 공간에서 사용하는 필기구 문제를 물었다. 소련의 과학자들은 당연히 연필을 쓰고 있는데 미국은 다른 것을 쓰냐고 반문했다. 미국 과학자들은 스페이스 펜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한 동안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인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먼저 우주 공간에서 연필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무중력인 우주 공간에서는 연필심이 부러지는 경우가 발행하거나, 연필의 흑연 가루가 날리더라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부러진 연필심이나 흑연 가루가 우주 비행사의 호흡기에 들어갈 수도 있고, 기계 장치 안에 들어가 고장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시 미국 항공 우주국은 우리가 보통 샤프라고 부르는 기계식 연필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가장 큰 반전은 스페이스 펜은 미국 항공 우주국에서 개발한 것도 아니다. 필기구를 제작하는 민간 기업이 개발하였으며, 미국 항공 우주국에서 구입해서 사용한 것이다. 게다가 소련 또한 이 펜을 구입해 사용하였다. 또 다른 반전은 일반 볼펜도 우주 공간에서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를 검증하지 않고 믿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문이나 방송에서 하는 이야기, 혹은 권위 있는 학자나 대학 교수, 사회 유명 인사 등이 하는 말을 맹목적으로 믿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는 스스로 검증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문이나 방송의 앵무새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게임은 콘텐츠이다.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콘텐츠의 내용을 고민해야 한다. 고민하지 않으면 그 내용이 수많은 오해를 양산할 수도 있다. 최근 검증하지 않은 기사를 쓰레기처럼 쏟아내는 많은 기자와 신문이 있다. 이런 기자와 신문들이 검증도 하지 않고 게임을 중독 물질로 몰아세우는데 앞장서고 있다. 최소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우리 게임인들은 이런 몰지각한 기사의 이면에 있는 사실 확인을 스스로 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것이 게임과 게임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높이는 길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아울러 필자가 위에 쓴 에피소드 역시 스스로 확인해 보기 바란다. 필자가 쓴 내용 역시 사실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우주 비행사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 공간에서 연필을 사용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 이중반룡의 게임애가(泥中蟠龍의 Game愛歌)는 본인이 현재 <경향 게임스>에 2013년 9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칼럼의 초고를 올리는 것입니다.


August 15, 2019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게임 중독을 말하는 자! 게임을 아는가? Part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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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독을 말하는 자! 게임을 아는가? Part6
 

최근 한일간 무역 분쟁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다. 필자 역시 공개된 자리 혹은 온라인, 개인적인 자리 등에서 일본의 경제 제재에 대해 분노를 표현해 왔으며, 일본 여행을 취소했고,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지금의 불매 운동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일본이 다시는 이런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콘텐츠를 접하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주장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이번 무역 분쟁은 일본이 오랜 준비를 하고 도발한 경제 전쟁이라는 내용이다. 물론 필자가 이 내용 자체가 터무니없는 내용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최근 한일간 무역 분쟁이 일본의 치밀한 계획하에 진행된 것 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결론이 치밀하게 준비된 일본을 이기기 어려우니 바로 맞대응할 것이 아니라 한발 물러서서 침착하게 대응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적은 준비해서 먼저 선공을 해왔는데 언제까지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회의만 하고 있으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회의를 통해서 나올 수 있는 방안에 어떤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임진왜란때 대책 회의만 하고 있고, 의병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6.25때 대응 방안만 논의하고 있고, 학도병을 비롯한 참전 용사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응 방안이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적의 공격에는 적극적으로 맞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말 일본이 치밀하게 준비한 경제 전쟁이라면 우리가 물러선다고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물러서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적에게는 상처받을 각오로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폭력은 계속된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며, 불편한 진실이며, 가슴아픈 현실이다.
 
최근 다양한 채널에서 게임 중독 관련 질병 등록의 과정이 의료계와 학부모 단체 등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서 몇 년간에 걸쳐 진행되어 왔음을 이야기했다. 필자는 게임 중독 주장과 관련한 문제는 한일간 무역분쟁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한발 물러서서 게임을 중독 원인으로 인정하고, 이미지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좋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필자는 단호히 거부한다. 여기서 물러서면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게임을 사회악으로 몰아세우며 게임 산업의 기반을 무너트릴 것이며, 망가진 게임 산업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약 3개월에 걸쳐 써 오던 게임 중독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박 칼럼은 일단 여기에서 마무리하겠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 사실을 잊지않도록 주기적으로 그들의 이기적이고, 무지하고, 무책임한 주장에 맞서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주권을 지키는 일처럼 게임인의 자존과 권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 이중반룡의 게임애가(泥中蟠龍의 Game愛歌)는 본인이 현재 <경향 게임스>에 2013년 9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칼럼의 초고를 올리는 것입니다.

August 01, 2019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게임 중독을 말하는 자! 게임을 아는가? Part5

이중반룡의 게임애가
泥中蟠龍’s Game愛歌

게임 중독을 말하는 자! 게임을 아는가? Part5
 

최근 황당한 뉴스가 있었다. 몇 몇 소수의 학부모들이 남성인 자녀가 연애나 포르노 같은 것에 빠져 사고를 칠 수 있다고 정관 수술을 시키고 있다는 기사였다. 부모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10대의 성적 호기심은 당연한 것이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가정과 학교가 아이에게 올바른 성에 대한 인식을 가르치고, 피임 등에 대한 정확한 성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뉴스에 언급된 부모들은 자신들이 편하기 위해 아이를 거세해 버린 것이다. 국가 권력도 인권의 문제가 있어, 성범죄자를 대상으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인권을 유린하며 자행한 것이다.
 
누구나 욕망은 있다. 욕망을 참는 것을 배우는 것이 보통 이야기하는 사회화이다. 우리는 대부분 항상 일정 수준 이상 참으며 살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욕망을 참지 못하면 범죄자가 되며, 대부분의 일반인은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참으며 살고 있다. 이런 사회화 과정을 배우는 공간이 바로 가정과 학교이다. 가정과 학교는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수학과 영어를 공부하는 기계를 양산하는 공장이 아니다. 그런데 현재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수학과 영어를 잘하는 기계로 만들기 위해, 방해되는 사회화 과정을 생략하고, 법과 제도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심각한 직무유기이다.
 
위의 사례처럼 아이가 욕망을 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여 미리 정관 수술을 시키는 것은 내 아이가 사회화 되지 못한 잠재적인 범죄자로 선언하고, 미리 교도소에 보내는 것과 같다. 또한 내 아이가 공부에 집중하고, 연애나 포르노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삐뚤어진 욕망을 참지 못하고 저지른 범죄이다. 그런 일을 행한 부모가 사회화가 덜 된 인격이라는 반증이다.
 
최근에 자행되고 있는 게임 중독에 대한 논의 역시 마찬가지 이야기이다. 아이들의 학업에 방해된다는 논리 하나로 게임을 포르노 수준으로 평가절하 하였다. 아이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혹은 중독 환자로 만드는 것은 사회화가 덜 된 부모의 삐뚤어진 욕망이 저지르고 있는 범죄와 같다. 게임 중독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사람 중에 내가 접한 경험으로는 게임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냥 아이가 공부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싫을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욕망을 접하게 된다. 게임은 그런 수많은 욕망의 대상 중 하나일 뿐이다. 게임이 다른 욕망보다 더 자극적이고, 몰입감이 높다고 해서 그것이 게임을 특별히 다른 대상과 분리하여 더 규제해야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더 이상 자격없는 부모들이 부족한 아이의 사회화 과정에 대한 변명으로 게임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길 바란다. 욕망을 참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가정과 학교 의무이지 게임이 책임져야 할 의무가 아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가정과 학교가 게임을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 이중반룡의 게임애가(泥中蟠龍의 Game愛歌)는 본인이 현재 <경향 게임스>에 2013년 9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칼럼의 초고를 올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