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0, 2016

게임과 자본, 그리고 글로벌 시장



게임과 자본, 그리고 글로벌 시장
 


최근 국내 게임 업계는 극심한 투자 위축을 경험하고 있다. 글로벌 게임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모바일 게임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이미 전통적인 게임 시장인 온라인 게임시장이나 콘솔 게임 시장의 규모를 넘어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20161130일 발표자료>1)
 

투자가 줄어드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투자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2013년 시작된 모바일 게임의 붐을 타고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이루어진 많은 게임 업체에 대한 투자가 손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벤처 기업에 대한 투자는 특성상 여러 개의 투자 중 상당수가 손실이 되고, 소수의 투자가 여러 투자의 손실을 메우고도 남을 만큼 벌어주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각각의 투자가 손실로 이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여러 투자 건을 합한 전체적인 투자의 손실은 해당 산업에 대한 투자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만들기 때문에 위험하다. 최근 3년 정도 사이 게임 업체 투자를 통해 투자 수익을 낸 투자사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작으며, 게임 업체에 투자한 대부분의 투자 업체는 손실을 보았다.
 

1) 위의 도표는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해외 게임 업체에 대한 투자를 포함하고 있어 실제 투자 감소의 폭은 더욱 크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런 국내 사정에 대한 부분만은 아니다. 게임 업계가 최근 글로벌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듯이 투자 분야도 글로벌 금융 시장과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영국의 유로존 탈퇴 소식과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국내 주식 시장이 움직이고, 부동산 가격이 움직이는 것은 국내 금융 시장이 그만큼 해외 금융 시장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최근 미국의 금리가 지속적인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실업 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국가 부채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금리 인상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되면서 미국의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미국의 금리는 국내 게임 산업과 하등의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 금융 시장은 해외 금융 시장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금리가 인상되면 해외로 투자되었던 많은 미국의 자본은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또한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국가에 투자되었던 자본은 상당 수가 미국으로 투자처를 옮겨갈 것이다. 그 중 가장 손쉽게 투자처를 옮길 수 있는 자본 중 하나가 한국에 투자된 자본이다. 현재 국내에는 생각이상의 많은 자본이 해외에서 들어와 다양한 산업 분야에 투자되어 있다. 그 중 게임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최고 그룹에 들어있는 몇 안되는 산업 중 하나이며, 그런 이유로 많은 해외 자본이 다양한 루트로 국내 게임 산업에 투자되어 있다. 만약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많은 자본이 국내에서 미국으로 투자처를 옮긴다면 가뜩이나 줄어든 국내 게임 산업 투자는 더욱 위축될 것이다.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보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국내 게임 산업은 글로벌 게임 산업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2000년대 초반에 국내 게임 산업은 온라인 게임을 중심으로 글로벌 게임 시장에 진출하여 많은 수익을 올렸고, 그것이 반영되어 많은 게임 업체가 주식 시장에 상장하였다. 또한 모바일 게임 시장이 활성화되던 초기에 많은 국내 모바일 게임 제작사들은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러브콜을 받았고, 작게는 수백억에서 수천억의 기업가치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국내 제작사에 대한 평가는 해외 투자사들의 높은 평가를 기반으로 해외에서 유입된 많은 투자 자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중국의 많은 투자 자본은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국내 제작사를 찾아 투자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제 해외의 많은 투자 자본은 더 이상 국내 모바일 게임 제작사에 대해서 예전처럼 매력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국내 제작사의 기술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나, 해외의 많은 제작사들의 기술력이 높아져 기술 격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비슷한 개발 능력이 있는 제작사가 나타나거나 비슷한 개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가 가능한 제작사가 있다면 글로벌 투자 자본은 당연히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 정책은 우리에게 나쁜 소식일 수 있다. 달러의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간 투자의 거래는 달러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 제작사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적인 제작 능력은 인정받고 있으나 월등히 많은 유저 수의 영미권 중심 글로벌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의 게임 제작 업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유럽의 게임 제작사들의 기업가치가 달러를 기준으로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외 많은 투자사들은 같은 기업 가치라면 영어로 커뮤니케이션 원활하고 활발한 해외 진출이 유리한 유럽의 게임 제작사를 투자 대상으로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 시장에서 기업은 하나의 상품이다. 당연히 시장의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변한다. 불과 3~4년 전에 몇 백억의 기업가치로 평가되던 회사가 지금 1조원이 넘는 기업가치로 평가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 1~2년간 전 세계적으로 많은 모바일 게임 제작사가 설립되었으며, 평균적으로 설립 초기의 기업가치가 낮아지고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모바일 게임 제작사의 기업가치는 1~2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요가 줄었음에도 상품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기업가치도 높다면 많은 해외 자본들은 국내 제작사에 대한 투자를 외면할 것이며, 더 나아가 국내 투자 자본도 해외 제작사로 눈을 돌릴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예측이 아니라 작년부터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중국의 금한령>

그 다음으로는 많은 모바일 게임 업체가 바라보고 있는 중국 시장을 이야기해 보자. 최근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중국내 한국 영화, 드라마 등을 포함한 한류 콘텐츠 전반에 대한 제재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한국 게임에 대한 중국 정부의 다양한 제재 조치가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상황에 영상 콘텐츠에 대한 제재가 증가하는 것은 게임에 대한 제재도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모바일 게임 시장은 몇 년간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경쟁이 심해지고, 상위권 게임 순위가 고착화되어 가는 국내 게임 시장과 비교되면서, 국내 게임 제작사에게 대안이 되어 왔다. 이런 중국 시장의 문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국내 게임 업체의 판로가 줄어드는 것과 같다.
 
또 다른 이야기도 좀 해보자. 최근 필자는 모 게임 업체와 투자 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물론 투자 상담 자체가 필자의 일이고, 투자 상담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니다. 다만 필자가 놀란 것은 해당 업체의 고정 비용이었다. 우리가 통상 벤처 기업이라고 말하는 업체는 미래의 성장 가치를 위해 현재의 어려움을 감수하고 모험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특히 게임 제작사는 여타 장치 산업과 달리 사무실 공간 비용 등의 약간의 금액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인건비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물론 규모가 큰 업체나 상장사의 경우는 아주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으나, 매출이 아주 작거나 없는 일반적인 벤처 기업에서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 사람을 보는 것은 흔하지 않다. 특히 다양한 급여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기업의 특성상 평균치가 높은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보통 20명 수준의 게임 제작사를 기준으로 매월 8~9천만원 수준의 고정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이중 인건비가 80% 안팎인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최근 필자가 상담한 업체의 고정비 수준은 20명을 기준으로 약 1.4억원 수준이었으며, 이는 이미 흑자를 내고 있는 규모 있는 제작사의 고정비 수준이다.



 

<스타트업 벤처 기업에서 높은 임원의 인건비는 문제가 있다>

물론 필자가 벤처 기업에 일하면 낮은 인건비로 혹사당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 역시 샐러리맨이고, 능력에 따라 급여를 받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벤처 기업은 미래 성장 가치에 자신을 투자한 사람들의 집단이고, 인센티브, 스톡옵션 등의 다양한 동기 부여를 위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매출도 없이 매월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기업에서 안정적인 큰 기업에서 받던 수준의 급여를 대부분 받고 있다는 것은 실무를 담당하는 개발자의 급여도 높다는 이야기지만 기본적으로 임원들의 급여 수준이 아주 높다는 이야기이다. 투자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그 업체의 임원은 남에게 투자받은 돈으로 넉넉하게 급여를 받아가면서 성공할 경우 그 이상의 많은 수익을 독식하는 사람들과 다름없다. 게다가 더 당황스러운 것은 이런 업체가 하나 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내용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외부 환경이 국내 게임 제작사에게 좋지 않다는 사실이다. 또한 어려울 때는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게임 업계의 투자 환경이 좋지 않고, 모바일 게임의 매출이 양극화되면서 위기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게임 업체 종사자들이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업체들과 이야기하면서 필자가 느끼는 점은 위기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살아남는 것이 목적일 때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것이 실무를 하는 개발진의 급여를 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공했을 때 가장 많은 과실을 가져갈 수 있는 임원들이 더 졸라매라는 의미이다. 게임 제작사도 분명 벤처 기업이다. 벤처 기업이라면 정말 치열함이 필요하다. 필자는 넉넉하고 풍족한 벤처 기업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넉넉하고 풍족하면 이미 벤처가 아니다.

지금까지 우울한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물론 필자가 국내 게임 산업의 기반이 위협받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국내 게임 산업에서 탈출하라는 의미로 이런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들이 있으려면 자본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를 견뎌야 할 때이다. 어떤 영화의 대사처럼 강한 기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기업이 강한 것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환경에 적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국내 게임 업체들이 과거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을 모르는 것은 분명 문제다. 그러나 변화를 미리 파악하고 있다면 대응이 가능하다.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은 국내 업체에게 글로벌 환경에 대한 더 많은 공부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국내 게임업체들도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부할 때가 온 것이다. 언제까지 국내 시장만 보면서 수천 개의 게임 제작사가 다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을 공부하고 자본에 대한 이해를 높여 어려운 시기를 살아남아 다시금 한국의 게임 제작사가 각광받는 시기를 준비할 때이다.
 







※ 본 원고는 2016년 12월 게임물관리위원회 웹진에 기고한 글의 초고입니다.